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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루트를 찾아서](1)中·한반도·日문명의 젖줄 ‘발해문명’

 

석성, 돌무덤, 빗살무늬토기, 옥기

경향신문 탐사단은 7월27일부터 5일간
 동양문명의 서막을 연 다링허·랴오허 일대를 돌아보았다. 국내언론사상 처음 있는 취재이니만큼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탐사단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발굴이 끝나 아직 국내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유적(싼줘뎬 석성)도 보았다. 이외에도 청쯔산, 싱룽와 유적, 차오마오산(草帽山) 제사유적 등도 전문가들의 발길을 쉽게 허락치 않은 궁벽한 곳에 놓여 있다. 한데 전혀 낯설지 않았다.


 하이와 싱룽와 유적에서 확인된 ‘갈지(之)자·사람 인(人)자 빗살무늬 토기’는 우리 신석기문화의 전형적인 유물이 아닌가. 또한  영생불멸의 상징인 옥결(玉?·옥으로 만든 귀고리)은 차하이-싱룽와 유적부터 훙산문화까지 도배하다시피했다. 이형구 교수는 “옥결은  최근 한반도 동해안 고성 문암리(BC 6000년)에서도 나왔다”면서 “엄청난 규모의 돌무덤과 제단, 신전인데 석관묘, 석실분, 적석총 등 돌무덤은 우리 민족의 고유 묘제”라고 설명했다.

훙산문화의 대표 유적인 뉴허량에서는 수장(首將)의 것으로  보이는 큰 적석총과 27개의 석관묘가 확인됐다. 이 양식은 고구려·백제의 적석총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뉴허량 유적 바로 곁에 있는 직경이 100m가 넘는 돌로 쌓은 대형 피라미드(금자탑)도 이번에 직접 보았다.

또한 뉴허량 유적에는 조상신과 하늘에 제사 지낸 원형 제단이, 인근 구릉에서는 지모신 신앙의 상징인 여신묘와 여신상이 각각 확인됐다. 이런 여신상은 랴오허를 거쳐 랴오둥 반도와 한반도에서도 두루 보인다.

인된 치(雉)만 13개나 되는 어마어마한 츠펑 산줘뎬(三座店) 석성(BC 2000~BC 1200년). 고조선의 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구려 백암성과 백제 계양산성 등과 축조기법이 똑같다. 지난해 발굴이 끝났으며, 이번에 경향신문 탐사단이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13개 치(雉)가 달린 석성은 고조선?

이밖에 싼줘뎬과 청쯔산에서 확인한 석성과  제사유구, 주거지 등을 본 이형구 교수는 “어쩌면 이렇게 우리 고유의 축성술과 같은지 모르겠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싼줘뎬  석성은 확인된 치만 13개나 되는 견고한 석성이었다. 청쯔산 역시 ‘고국(古國)이 존재했던 곳’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하가점 하층문화(BC 2000~BC 1200년)에 속하는 이 유적들은 과연 고조선과의 연관성은 없는 것일까.

형구 교수는 “산 위에 이런 큰 규모의 돌을 운반할 동원력이라면 전제권력을 갖춘 국가였을 것”이라면서 중원 하나라 시기에 동이족 국가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복기대 단국대박물관 연구원은 아예 “고조선 유적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렇다면 중국인들은 이렇게 동이족, 그 가운데서도 우리 민족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발해문명을 어떻게 ‘요리’하고 있을까. 훙산문화 발굴을 담당하고 있는 쉬쯔펑(徐子峰) 츠펑대 교수는 “황허문명은 농업 중심의 문화였고, 랴오허문명은 신권 중심의 복합문화였다”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확실하게 정리했다. 다만 랴오허문명과 황허문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것.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 고조선 추정 청쯔산·싼줘뎬 유적

 

** 샤자뎬의 한자어 표기를 수정하였습니다. 독자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

-거대한 성, 수천년 전 韓민족을 증거하다-

월28일.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오후였다.


36도 불볕더위 속에 츠펑(赤峰) 인근 청쯔산(城子山) 유적을 찾아 나선 길. “일정에 없다”며 몽니를 부리는 버스 기사와  한바탕 큰소리가 오간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가도가도 끝 없는 길. 아는 길이라고 자신했던 안내인이 연방 고개를 갸웃거린다. 길을 묻느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를 무려 10여차례.

천신만고 끝에 쓰다오완쯔(四道灣子)역에 닿았다. ‘다 왔나’ 싶었더니 아니란다. 안내원이 뭔가 흥정을 하더니 다시 마을 6인승 승합차에 타란다.

 # 위험천만 역주행

 황토먼지를 일으키며 10여분 달리더니 어라 이상한 곳으로 들어간다. 츠펑~퉁랴오(通遼) 간 고속도로 공사구간이다. 아직 공사가 한창인 미개통 도로라 출입금지 팻말을 달아놓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휙 진입해버린다.


‘어어!’ 탐사단은 비명을 질렀다. 역주행길이다! 고속도로를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다. 모골이 송연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길.
그냥 소름 돋는 스릴을 즐길 수밖에. 20여분 ‘역주행’의 경험을 맛본 뒤 역시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곤 등산이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수풀 가득한 청쯔산. 뛸 듯이 단숨에 올라갔다. 1분1초라도 빨리 올라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그 놈의 욕심 때문에.

과연 그랬다. 서요하 상류, 평원을 조망할 수 있는 정상, 그리고 수풀 사이로 펼쳐지는 끊임없는 돌, 돌의 흔적.

10여개의 작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청쯔산의 전체 유적 규모는 6.6㎢다. 아(亞)자 형태인 주봉 유적만 해도 총 면적이 15만㎡나 된다. 주위에는 성벽 같은 반원형의 마면식(馬面式·치) 석축이 있다. 찬찬히 뜯어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200기에 달하는 적석총과 석관묘, 그리고 하늘신과 조상신에 제사를 지냈다는 돌로 쌓은 제단터와 사람들이 살았거나 공무를  보았을 대형 건물터…. 많은 적석총과 석관묘…. 외성과 내성으로 잘 조성된 성벽…. 여섯구역에서 확인된 원형석축건물지만 무려 232개나 된다니….

# 청쯔산 정상에 선 나라는?

이형구 선문대 교수와 윤명철 동국대 교수는 “거대한 무덤터이자 제단터이며, 유적의 규모와 내용으로 보면 국가단계의 사회조직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내성에서는 최고위층이 거주한 것으로 보이는 건물지 10개가 확인되었습니다. 중국 학자들의 말처럼 고국(古國)의 형태가 분명합니다.”(이형구 교수)

탐사단의 눈을 끄는 것은 우리와의 친연성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샤자뎬(夏家店) 하층문화의 대표적인 유적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그런데 샤자뎬 하층문화는 학자들 간 논란이 있지만 늦춰 잡아도 대략 BC 2000~BC 1200년 사이의 문화이다. 눈치 챘을 테지만 고조선의 연대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적석총과 석관묘, 제단터는 물론이고, 성벽의 축조 방법을 보면 고구려·백제와 비슷합니다. 할석으로 한 면만 다듬어 삼각형으로 쌓고, 다음 것은 역삼각형으로 쌓는 형식 말입니다.”


이형구 교수는 “할석과 삼각석(견치석), 그리고 역삼각형의 돌로 견고하게 쌓은 성벽은 인천 계양산성의 축성 방식을 연상시킨다”고 밝혔다. 기자를 비롯한 탐사단은 청쯔산 정상에 널려 있는 이른바 덧띠무늬 토기편을 수습했다. 이 역시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문양이다.

그렇다면 혹 고조선? 기자는 솟구치는 의문점을 가슴에 담아둔 채 하산하고 말았다. 학자들도 기자의 구미에 맞는 속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 어마어마한 석성의 실체는?


그런데 청쯔산 탐사는 그저 리허설에 불과했다. 다음날. 츠펑에서 북서쪽으로 40㎞쯤 떨어진 싼줘뎬(三座店)으로 향했다. 역시 힘겨운 여정이었으나 탐사단은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설●다. 지난해 정식 발굴을 끝낸, 그래서 발굴보고서도 아직 나오지 않았고,국내 언론에도 소개되지 않은 ‘싱싱한’ 싼줘뎬 유적을 찾아가는 참이니…. 유적은 2005년 인허(陰河) 다목적댐 공사 도중 발견되었고, 지난해 말까지 발굴을 끝냈다.

과연 댐 공사가 한창이었다. 오른쪽엔 야트막한 야산이 보였다. 청쯔산과 비슷한 입지다. 기자 일행은 메마른 산등성이를 서둘러 올라갔다.


“와!” 역시 1착으로 뛰어오른 기자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저 보이는 대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댈 뿐. 마치 어제의 청쯔산 집터처럼 완연하게 드러난 집터와 적석총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고, 제사터와 그리고 도로 혹은 수로가 구획 사이에 조성돼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양념. 정상부에 오르자 거대한 성벽의 행렬이 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학자들도 처음 보는 유적이라 흥분에 휩싸인 듯했다.

“치(雉·적을 제압하려고 성벽 밖으로 군데군데 내밀어 쌓은 돌출부)가 도대체 몇 개야?”(이형구 교수)

이교수가 성의 행렬을 더듬으며 세어보니 확인할 수 있는 것만 13개나 되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성벽이다. 유적의 연대는 BC 2000~BC 1500년 사이(샤자뎬 하층문화)의 것이란다.

# 고구려·백제를 빼닮은 전통

“전형적인 초기 형식의 석성이네요. 기저석을 쌓고 수평으로 기저를 받친 뒤 ‘들여쌓기’를 한 모습…. 횡으로 쌓은 뒤 다음 단은 종을 쌓았어요. 4000년 전에 이렇듯 성벽이 무너지지 않게 견고하게 쌓았다니….”(이교수)


윤명철 교수는 “주거지에 샤자덴 하층문화 때의 토기편들이 널려 있다”면서 “치가 촘촘하게 있다는 것은 육박전 같은 대규모 전투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교수가 실측해보니 치는 5m 간격으로 서 있었다. 대각선을 뚫은 문지(門址)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은신하면서 드나들 수 있는 출입문이다.

성이 무너지지 않게 견치석을 적절하게 배치한 석성의 또 다른 특징은 아군의 추락을 막고 적병의 침입을 방어하려고 여장을 쌓았다는 것이다. 유적의 전체 면적은 1만4000㎡였고, 건물지 수십기와 석축원형제단, 적석총, 그리고 석축 저장공(13개)이 확인되었다.

석성은 츠펑 지구를 포함한 발해만 북부지역에서 발전한 축성술이다. 이 전통은 고구려와 백제로 그대로 이어진다. 또한 조선시대에 쌓은 수원 화성의 공심돈(치의 역할)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는 유서 깊은 우리 축성술의 전통이다.


놀라운 석성과 제단터, 주거지, 무덤…. 어쩌면 이렇게 어제 본 청쯔산성과 오늘 확인한 싼줘뎬 석성이 빼닮았고, 이 전통이 고구려와 백제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또 한번 생기는 궁금증…. 고조선의 채취가 물씬 풍기지 않나. 정녕 고조선의 성은 아닌가.

# 중원엔 하(夏), 동북엔 고조선?

중국학계의 분석에서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랴오시(遼西)의 샤자뎬 하층문화는 하(夏)나라와 같은 강력한 방국(方國)이 존재했다는 증거이다.”(궈다순 랴오닝성 문물연구소 연구원)

“(청쯔산 같은) 유적은 초기 국가의 형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하(夏)~상(商)나라를 아우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우한치 박물관 도록)


이형구 교수도 “중원의 하나라(BC 2070년 건국)와 동시대에 청쯔산과 싼줘뎬 같은, 수천기의 석성을 쌓은 국가권력을 갖춘 왕권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중국 학자들도 동의하듯 제사 공간, 주거지는 물론 거대한 적석총·석관묘까지, 여기에 행정 조직과 공장을 갖춘 왕권 말이다. 이교수는 “산 위에 이런 큰 규모의 돌들을 운반해서 성을 쌓고 건축물과 돌무덤을 조성할 정도면 전제권력을 갖춘 국가가 아니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라고 부연한다.

그렇다면 고조선이냐. 이형구 교수나 윤명철 교수는 확언하지 못하지만 뉘앙스는 짙게 풍긴다. 여러 증거로 보아 “중원 하왕조 시기에 섰던 동이족의 왕권국가”가 분명하며, 이것은 ‘4000년 전의 고구려성’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고조선의 경우 ‘내가 고조선 유물·유적이요’하는 명문(銘文)을 달고 나오지 않는 이상 100% 확인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고구려의 것’을 빼다 박았지만 2000년의 시차가 있다는 점도 풀어야 할 과제이다.

# 고조선 연구의 밑거름

 그러나 지난해 싼줘뎬 석성과 청쯔산 유적을 보았던 복기대 단국대 박물관 연구원은 “백암성 같은 고구려의 성과 너무도 똑같지 않으냐”면서 한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즉, 샤자뎬 하층문화 인골 134기를 분석한 주홍(朱泓) 지린대 교수는 “샤자뎬 하층문화 인골은 정수리가 높고, 평평한 얼굴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이는 ‘고동북유형’이 속한다”면서 “이 같은 유형은 랴오시 지역과 전체 동북지역에서 가장 빠른 문화주민”이라고 분석했다. 허베이성(河北省), 산시성(山西省), 산시성(陝西省), 네이멍구(內蒙古) 중남부 지구에서 보이는 ‘고화북유형’과는 다른 인종이라는 것이다. 결국 샤자뎬 하층문화인들은 동북유형의 문화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측정된 12곳의 샤자뎬 하층문화 유적 탄소연대측정값이 BC 2400~BC 1300년이라는 점이나, 고조선의 연대와 부합된다는 점도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어쨌든 막 발굴을 끝낸 싼줘뎬 석성과 청쯔산 유적은 우리 고대사와 고대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이들 유적을 만든 이들의 문화전통은 동이의 것, 그 가운데서도 석성과 제단, 돌무덤의 전통을 쌓은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전통의 흔적은 청쯔산, 싼줘뎬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8000년 전까지 소급된다. 아니 그 이상 장구한 세월 동안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가야 할 탐사단의 여정은 그 머나먼 세월의 발자취를 찾는 것이다. 처음부터 “고조선이 아니냐”며 끈질


[코리안루트를 찾아서](3) 중국 조상 ‘진뉴산인 기원설’


-“발해만-한반도 구석기문화 한 영역”-


발해만에서 확인된 인류화석인 진뉴산인(28만년전)의 복원모습. 랴오닝성 박물관은 이 진뉴산인은 중국인의 조상으로 꼽고 ‘진화의 흐름도’에 진뉴산인을 그려넣고 있다. 선양/김문석기자
“挑戰 夏娃學說(도전 하와학설).”

7 월30일. 탐사단은 선양에 있는 랴오닝성 박물관 첫번째 전시실에서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하와(夏娃)’는 아담과 이브의 ‘이브’이며, 이 문구는 “이브학설(The Eve of Theory)”에 도전한다는 뜻이다.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이 곳에서는 이른바 ‘랴오허문명전(발해문명전)’이 상설전시되고 있었다. 이미 독자 여러분들에게 요점을 밝혔듯(경향신문 10월8일자 보도) 이 전시는 “중국문명의 시원을 발해문명(랴오허문명)”으로 인정하면서 발해만 유역에서 확인된 문명의 역사와 증거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 흑인 ‘이브’의 출현

그런데 ‘도전 하와학설’이란 무엇인가. 우선은 중국인들이 말하는 이른바 ‘하와학설’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1987 년 버클리의 유전학자들인 앨런 윌슨과 레베카 칸, 마크 스톤킹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발표한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60억명 인류의 조상은 지금부터 약 15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어느 여성이라고 입증해낸 것이다.

어떻게 분석해낸 것일까. 이들은 세포에 들어있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작은 세포구조에 주목했다. 미토콘드리아는 복잡한 구조의 화학물질을 분해해서 단순구조의 고에너지 물질로 만드는 일종의 세포전지 구실을 한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에는 1만6500개의 독특한 DNA가 존재하고 있다. 이 DNA의 염기서열은 사람마다 아주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미토콘드리아를 어머니의 난자에게서만 물려받는다는 점이다.

정자? 정자는 염색체만을 전달하며, 약간의 미토콘드리아를 갖고 있지만 수정과정에서 팽개쳐버린다. 윌슨 등 과학자들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지 금 세상에 살고 있는 30억명의 여성에게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계속 역추적하면…. 미토콘드리아 계보의 수는 윗세대 여성으로 올라갈수록 수십억에서 수백만, 수천, 수십, 한자릿수로 줄어들게 된다. 이 결과 과학자들은 현생인류의 조상을 ‘15만년 전(처음엔 20만년 전이었으나 후에 교정되었다) 아프리카에 살던 자매인 두 여성’이라고 결론내렸다. 이 여인에게 붙은 이름이 바로 ‘미토콘드리아 이브’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이브의 후손 중 일부는 약 10만년 전 아프리카를 탈출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다. 이것이 미토콘드리아 이브 학설에 뒤이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학설이다. 처음엔 회의적이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흑인 이브가 흑인 아담에게 사과를 주는, 다소 냉소적인 그림을 싣기도 했다.(스티브 올슨 저 ‘우리 조상은 아프리카인이었다·Maping Human History·몸과 마음 출판사’ 참조)

# ‘이브’에 도전장 내민 중국

하 지만 1990년대 들어 상황은 변했다. 배기동 한양대 교수는 “과학자들의 후속연구를 통해 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 학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들이 속출했다”면서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이제 정설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이로써 아프리카인은 원시 호모 사피엔스(아프리카)에서, 아시아인은 호모 에렉투스(아시아)에서, 유럽인은 네안데르탈인(유럽)에서 진화했다는 다지역기원론은 힘을 잃어갔다. 그러나 중국학계 주류는 이 같은 정설을 거부해왔다. 랴오닝성 박물관의 ‘도전 하와학설’은 바로 이 같은 흐름을 단적으로 일러주는 것이다.

중화주의를 신주 모시듯 하는 중국으로서는 절대 ‘하와학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1923년 중국 베이징 남쪽 저우커우뎬(周口店)에서 발견된 베이징 원인, 즉 50만년 전의 호모에렉투스가 중국인의 조상이라고 주장해왔다.

특 히 중국인들이 ‘믿는 구석’인 것이 바로 랴오둥(遼東) 반도에서 발굴한 진뉴산인(金牛山人)이다. 1986년 랴오닝성 잉커우(營口)현 서남쪽, 발해만에서 30㎞ 떨어진 작은 섬 같은 산에서 완전한 형태의 인류화석이 발견되자 중국은 호떡집에 불난 듯했다. 분석 결과 이 인골은 28만년 전 20~22살의 젊은 여인으로 추정되었다. 무엇보다 원시적 형태의 화덕이 확인된 게 중국인들을 흥분시켰다. 궈다순 랴오닝성 문물연구소 연구원은 “진뉴산인의 두개골과 상지골, 그리고 불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등을 종합하면 동시대의 베이징원인보다 발달한 인과(人科)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학계는 나아가 진뉴산인의 존재를 인류진화의 큰 과정으로 설명해놓고 있다. 즉 진뉴산인을 호모에렉투스(直立人·200만년 전)와 호모사피엔스(智人·20만~5만년 전)의 사이, 즉 초기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는 과도기적 단계를 이끈 것으로 평가해 놓고 있다.

# 중국인의 조상은 발해만 진뉴산인

‘랴오허 문명전’은 또한 약 25만년 전 인류화석인 먀오허우산인(廟後山人)에도 주목하고 있다. 먀오허우산은 랴오둥 산간지역인 번시(本溪)시에 있다.

특히 전시실 설명서에는 먀오허우산인은 화베이(華北)지구의 커허-딩춘 대석기 문화는 물론 ‘한반도의 구석기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해놓고 있다.

전시회는 또 랴오시 카줘현 다링허(大凌河) 유역에서 확인된 7만년 전의 거쯔둥(합子洞) 유적과, 랴오둥에서 발견된 4만~1만8000년 전의 샤오구산(小孤山) 유적도 중요한 구석기 유적으로 전시해놓고 있다.

랴 오닝성 박물관은 이렇게 진뉴산인(28만년 전)과 먀오허우산인(25만년 전), 거쯔둥인(7만년 전), 샤오구산인(4만년 전) 등을 이른바 ‘랴오허문명전’의 첫번째 전시실로 꾸몄다. 그리곤 ‘도전 하와학설’이라는 문구를 걸어놓고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가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면서 세계학계의 정설에 도발적인 설명을 내건 이유는 분명하다.

중국문명의 원류는 발해만에서 탄생한 발해문명(랴오허문명)이며, 그 발해문명은 멀리 28만년 전에 아시아 동북에 존재했던 진뉴산인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자란보(賈蘭波)는 “베이징인이 살고 있을 당시, 베이징인보다 진보적인 특징을 가진, 즉 원시 부엌까지 갖춘 진뉴산인이 있었다”면서 “진뉴산인부터 초기 호모사피엔스의 신시대로 돌입했다”고 말했다. ‘중화민족’의 원류를 28만년 전의 발해만에서 찾는 것이다.

궈다순은 발해만 유역에서 나타난 체계적인 구석기문화의 연계성을 설명한다. 즉 발해만 유역에서는 진뉴산인·먀오허우산인·거쯔둥인·샤오구산인 말고도 음미할 만한 구석기 유적들이 많다는 것이다. 즉 압록강 하구인 둥강(東港)시 첸양(前陽) 동굴 인류화석과 젠핑인(建平人), 젠셴(錦縣) 선자타이(沈家台) 유적, 링위안(凌源)의 시바젠팡(西八間房) 유적 등이다.

그는 “랴오시(遼西) 구릉과 랴오둥(遼東) 산간지역에서 구석기 전기·중기·후기 유적이 두루 관찰된다”면서 “이는 고인류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중국은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아프리카를 나와(‘아웃 오브 아프리카’) 각지로 떠났다는 학계의 정설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진뉴산인이 발견된 랴오닝성 잉커우 현장. <이형구교수 제공>

# 발해만과 한반도 모두 같은 문화권

그 렇다면 과연 10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탈출했다는 현생인류가 아닌, 28만년 전 고인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배기동 교수는 “만약 중국인들이 진뉴산인을 중국민족의 원류라고 본다면 그것은 지나친 민족주의적인 시각이며, 지나친 중화주의”라면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검토하면 고인류와 현생인류 간에는 어떤 유전자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고인류는 요즘 사람들의 조상이 될 수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진뉴산인이나 먀오허우산인 같은 전기 구석기인들을 무슨 ‘민족의 원류이거나 뿌리’라고 여기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훗날 문명의 젖줄이 된 발해만 유역에서 잇달아 확인되는 구석기 유적들에 대해서는 우리도 관심을 둬야 할 것이다.

배교수도 “국경이 없던 시절이던 구석기 시대인 만큼 발해만뿐 아니라 한반도와 만주까지 같은 구석기 문화영역이었다”면서 “우리 학계의 연구도 한반도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발해만까지 넓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른바 ‘랴오허 문명전’ 전시실이 먀오허우산인을 설명하면서 “조선반도(한반도) 구석기 문화와 관련성이 있다”고 구체적으로 표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실 베이징인과 진뉴산인이 살았을 무렵, 한반도 전곡리 같은 곳에서도 고인류는 살고 있었다(약 30만년 전). 한반도에서는 이미 70곳이 넘는 구석기 유적이 확인됐고, 앞에서 살펴봤듯 발해만 유역을 비롯한 만주 일대에서도 10곳이 넘는 구석기 유적이 조사됐다.

북한에서는 1973년 평남 덕천군 승리산에서 ‘덕천인(10만~4만년 전)’과 ‘승리산인(4만~3만년 전)’이 잇달아 발견됐다. 77년엔 평양시 력포구역 대현동에서 력포인이, 80년에는 평양 검은모루 동굴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의 인류화석(룡곡인)과 석기가 확인됐다. 또한 같은 해 평양 승호구역 만달리에서는 ‘만달인’ 화석이 나왔다.

남한에서도 충북 청원군 두루봉 홍수굴에서 ‘흥수아이’로 이름붙인 인류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형구 선문대 교수는 “예컨대 룡곡 1호 동굴유적의 경우 구석기는 물론 신석기 인류화석도 나왔다”면서 “이것은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까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살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구석기인들이 1만4000년 전까지 한반도에 살다가 물러나고 그 자리에 새로있다.

〈츠펑·차오양·선양|이기환 선임기자 lkh@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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