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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부여 扶蘇山城 
백제의 패망...나라 잃은 백성은 목숨마저 부지하기 어려운가


 
 백제는 기원전 18년 온조왕이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서 건국하여 660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에서 패망할 때까지 약 700년 동안 고유한 문화를 꽃피워 동북아 문화교류의 역할을 했던 나라였다. 그리고 부여는 백제의 26대 성왕이 538년에 웅진(熊津: 지금의 공주)에서 천도하여 멸망하기까지의 마지막 왕도로서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중심지였다.

낙화암! 후세 사람들은 낙화암에 얽힌 애달픈 이야기로 백제의 마지막 날을 기억하고 있다.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사건에 뒤이은 우리 군의 사격훈련으로 나라 안팎이 온통 어수선했던 며칠 전, 충남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부소산성을 찾았다.

부소산성(扶蘇山城: 사적 제5호)은 부여읍 서쪽에 있는 높이 106m의 나지막한 부소산 산정에 흙과 돌을 섞어 다져쌓은 백제의 마지막 도성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사비성(泗__城)·소부리성(所夫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새밝’, 즉 ‘새벽’의 음역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은 백제의 성왕이 천도한 이후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123년 동안 왕도를 방어한 중심산성으로 부여 천도를 전후해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성의 둘레는 약 2,500m이며 산정을 둘러싼 테뫼식과 산등성이를 따라 쌓은 포곡식의 혼합식 축조 산성이다. 산성의 북쪽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로는 백마강이라 불리는 금강의 물길이 반달 모양으로 부소산 기슭을 휘감아 흐르고 있다.

부소산성 안에는 곡식을 저장하던 군창지와 백제식 가람의 네모꼴 건물터가 있으며, 영일루와 반월루가 있다. 그리고 부소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사비루가 있으며,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망루지가 남아 있다. 성내에는 동·서·남문지가 있으며, 북쪽 골짜기에 북문과 수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산성에서는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공을 기린 유인원기공비(劉仁願紀功碑)가 조각난 채 발견되었는데 지금은 부여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밖에도 성내에는 삼충사, 고란사, 낙화암, 서복사지, 수혈병영지, 궁녀사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백제시대의 유적이 즐비하다.

부소산성의 정문인 부소산문을 지나니 박석을 깐 울창한 숲길이 나타났다. 추운 겨울날씨 때문일까? 1350년 전, 이곳에서 백제군이 나당연합군을 맞아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산성길은 무척 한가로웠다. 이 전투에서 백제군만 무려 1만여 명이 전사했다고 하니 당시 산성은 죽어가는 병사들의 신음소리와 함께 피비린내가 진동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참혹하게 죽어갔을 고혼들을 생각하니 발걸음을 내딛기가 몹시 조심스러웠다.

낙화암으로 가기 위해 눈앞에 나타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았다. 몇 걸음 떼지 않아 의자왕 때의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 세 분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 나타나니 삼충사(三忠詞)다. 성충과 흥수는 백제 최고의 관직인 좌평을 지냈고, 계백은 황산벌에서 5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신라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장군이다. 사람들은 의자왕이 삼충신의 말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더라도 그리 허망하게 패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당은 국가 성역화 사업에 의해 최근 지은 건물로 매년 10월에 열리는 백제문화제 행사 때 제향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삼충사가 들어선 자리는 일제강점기 때 신사가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당 조금 못 미친 곳에 아치형 시멘트 구조물이 남아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때 사람들이 신사참배를 위해 드나들던 통로였다고 한다. 게다가 조선총독부에서는 부소산성에 도쿄신궁 못잖은 부여신궁을 지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비록 일본 패망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남의 나라 유적지에 신사를 세운 것도 그렇거니와 엄청난 규모의 신궁까지 지을 계획이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일제의 만행에 치가 떨린다.

삼충사를 지나 숲길을 걷다 보니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이어진 토성이 나타났다. 그리고 오래 걷지 않아 백제시대 때 왕과 귀족들이 해맞이를 하며 국정을 계획하고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했다는 영일루(迎日樓)에 닿았다. 영일루는 당초 홍산현 관아의 문루였던 것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산성 안에 있는 다른 건물들에 비해 비교적 고풍스런 편이다. 영일루에서 50여 걸음 떨어진 널찍한 곳에는 불에 탄 쌀이 대량으로 발견되어 널리 알려지게 된 군창지(軍倉址)가 있다. 처음 탄화미가 발견되었을 때는 백제 때의 것으로 알려졌으나 분석 결과 조선시대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이는 군창지가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군인들의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군창지를 돌아보고 백제의 태자가 거닐었다는 태자골과, 낙화암에서 숨진 백제 궁녀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궁녀사(宮女祠)를 거쳐 부소산 정상에 있는 사자루(泗__樓)에 닿았다. 사자루가 있는 자리는 본래 송월대가 있던 곳으로 산성 축조 당시 망루가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사자루는 임천현 관아의 문루였던 배산루를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누각의 현판은 구한말 고종황제의 아들인 의친왕의 친필이다. 그리고 누각을 옮겨 세울 때 이곳에서 광배 뒷면에 ‘정지원이라는 사람이 죽은 아내를 위해 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저승길을 가게 했다’는 명문이 있는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 196호)이 출토됐다고 한다. 사자루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굽이쳐 흐르는 백마강과 부여 읍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자루에서 북쪽의 내리막길을 걸어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선 바위에 다다르니 바로 낙화암(落花岩)이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당하자 부소산성에 피신했던 백제의 궁녀와 여인들이 스스로 절벽 아래 백마강으로 뛰어내려 죽음을 맞은 곳이다. 바위에는 적군에게 잡혀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음으로서 절개를 지키고자 했던 백제 여인들의 숭고한 넋이 서려 있는 듯 했다. 낙화암에는 1929년 부풍시사(扶風詩社)라는 시모임에서 세웠다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정자가 서 있는데 오히려 눈에 거슬리는 까닭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낙화암이란 여인들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꽃잎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련만 이름만으로도 애절하다. 아득한 절벽 위에 섰을 때의 마음이야 얼마나 비장했을 것인가. 정치근 시인은 「낙화암」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백마강 물결 위에 세월이 흐르고/ 고란사 저녁종은 애달피 울리네/ 아~ 아~ 삼천궁녀 서린 한 핏빛 되어/ 낙화암 절벽으로 꽃잎 되어 날으네/ 찬란한 영화는 꿈같이 사라지고/ 서러운 마음은 가눌 길이 없어라’

낙화암 절벽 중턱에는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었다는 고란사(皐蘭寺)라는 조그만 사찰이 있다. 이 사찰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름은 낙화암 절벽의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늘 푸른 여러해살이 풀인 고란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편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는 샘이 솟는데 백제의 왕이 즐겨 마시던 샘물이란다. 마침 목이 말라 표주박으로 샘물을 떠 벌컥벌컥 들이켜니 뼛속까지 시리다. 고란사에서 발길을 돌려 부지런히 서복사지(西復寺址)와 반월루(半月樓)를 돌아보고 하동정씨의 정려각(旌閭閣)에 다다르니 산성을 둘러보는데 약 두 시간이 걸렸다.

의자왕(義慈王)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결단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태자로 책봉되었을 때 효성이 지극할 뿐만이 아니라 동생들과의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海東曾子)라 불렸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 고구려와 화친을 맺고 신라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여러 번 군사를 내어 신라를 공격했고 변경의 여러 성을 빼앗았다. 특히 642년에는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공격하여 40여 개의 성을 빼앗았으며, 이어 대야성을 함락하는 등 위세를 떨쳤다. 또한 655년에는 고구려,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의 성 30여 개를 빼앗는 등 신라에 대해 시종 공세를 취했다. 이때가 백제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라와의 잦은 전투로 인해 지나치게 국력을 소모하였으며 말년의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국정이 문란해지면서 이것이 백제 패망의 원인이 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백제의 패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했는데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의 군대가 바다를 건너 백강(백마강)을 거슬러오고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은 탄현(대전 대덕구)을 넘어 진격해왔다. 백제군은 백강에서 당나라군에게 크게 패했으며,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일전을 벌인 계백장군의 결사대도 수적인 열세로 결국 패하고 말았다. 사비성(부여)이 포위되자 의자왕은 태자 효(孝)와 함께 웅진성(공주)으로 피난했으나 부소산성이 함락되자 곧 항복했다. 그리고 의자왕은 왕자, 대신, 장사 88명을 포함한 백성 1만 2천 명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된 뒤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죽었으며 망국의 왕들이 묻힌다는 낙양의 북망산에 묻혔다고 한다.

역사는 후세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백제의 패망에서 볼 수 있듯이 나라 잃은 백성들은 목숨마저 부지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라가 망한 뒤 과연 누굴 원망할 수 있겠는가. 산성을 뒤로하고 부소산문을 빠져나오는데 서녘 하늘이 핏빛 노을로 붉게 비껴 있었다. 부소산성이 함락되던 날에도 서녘하늘이 그리 고왔을까? 어느새 동짓달 짧은 해거름에 어둑어둑 땅거미가 짙어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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